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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공산악회 시산제(始山祭) 지내던 날` 류근만 이사
  • 이임수
  • 2018-03-13
  • 조회수 263

 

퇴공산악회 시산제(始山祭) 지내던 날                                              류근만  이사

                                                                     

아직도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싸늘한 지난 2월 끝 주 목요일의 맑은 아침에 나는 등산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입춘(立春)과 우수(雨水)라는 절기가 지났지만 아직은 늦은 겨울철이다. 그러나 나의 성급한 성격 탓에 겨울옷을 너무 일찍 벗어버린 것 같다. 아내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에 옷을 가볍게 입고 나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오늘은 퇴직공무원협동조합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올리기로 계획된 날이다. 조합에서 운영하는 산악회의 정기등산 일정이 매월 끝 주 목요일이다. 나는 구(舊) 충남도청 앞마당에서 출발하는 산악회버스를 탑승하려고 서둘렀다. 무술년 한 해의 무사안위를 기원하는 시산제는 충남 보령시에 소재한 성주산에서 올리기로 하였다. 시산제에 참여하는 산악회원들은 대부분 공직에서 은퇴한지 10여년이 지난 원로들이다. 내가 서둘러서 도착해 보니 먼저 온 회원들이 벌써 도착하여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침 8시에 출발한 버스는 논스톱으로 10시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급히 볼 일을 보는 사람, 주변을 둘러보면서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하는 모습들이다. 버스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날씨는 화사하지만 바람은 차갑다. 나 역시 전에 대천시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지나던 곳이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삼십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많은 변화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시산제를 올리기 위해 성주산자락의 성주사지 옆 양지바른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산악대장을 비롯하여 관계자들이 자리를 깔고, 상을 펴고, 제물을 진설하기에 분주하다. 두상(頭狀)이 준수한 돼지머리가 맨 윗줄에 자리하여 입을 크게 벌린 채 좌정(坐定)하고, 다음 줄에 시루떡과 포가 진열되었다. 앞줄에는 과일이 조율이시(棗栗梨柿) 순서로 차려졌다. 종이컵에 깨끗한 모래를 담고 그 위에 향을 꽂아 피웠다. 촛대는 종이컵 두 개를 겹친 다음 밑바닥을 칼로 ‘열 십(十)’ 자를 그어 만들었다. 종이컵 하나는 엎어서 촛대를 세우고 또 하나는 세워서 초를 끼웠다. 제사상 양측에 세워진 촛대는 넘어지지도 않고, 바람이 불어도 불꽃이 휘날리지도 않았다.

 

산악대장의 오랜 경험으로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것을 보고 모두들 감탄하였다. 술병 옆에 놓여 질 퇴주그릇은 불필요하단다. 술을 붓고 절을 한 사람이 그 술로 음복을 하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다 차려진 제사상 앞에 회원들은 일렬로 서서 엄숙하게 읍을 하였다.

 

제주는 당연히 협동조합 이사장이 맡았다. 제주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입을 크게 벌리고 주시하는 돼지 입에 복채를 넣고 잔을 올렸다. 참석자들은 제사상 앞에 끓어 앉고 산악대장이 축문을 읽었다. 시산제는 산의 신, 산신령께 제사를 올리는 것으로 산악회원들의 안전을 기원하고 소망을 비는 제천의식이다. 모두들 경건한 마음으로 무사안녕을 비는 모습이 진지해 보였다. 축문낭독이 끝나고 서있는 순서대로 한 사람씩 다가가서 술잔에 술을 따르고, 돼지 입에 복채를 넣고 절을 한 다음 자기가 부은 술은 직접 들고 나와서 음복을 하는 순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시산제를 올리는 회원들의 면면을 지켜보았다. 무사안녕을 비는 데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고, 산악회원들 모두가 한 해의 무사고를 비는 마음 역시 숙연하고 진지해 보였다. 우리 주변에 종교가 다르면 문중뿐 만아니라 가족 간에도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시산제에 참여한 산악회원 중에는 천주교신자 개신교신자 불교신자 등등 종교가 다양함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을 보고 참여의식이 참으로 중요함을 느꼈다.

 

개인의 생각보다는 공동체의식을 보여주는 산악회원들의 성숙함을 보았다. 역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사회 전반에 종교가 다르더라도 서로 존중하고 화합하고 협력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익을 위해서는 당파나 계파가 다르더라도 서로 협력하고 이해하고 보완하면서 발전해 가는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시산제가 끝나갈 무렵, 기다렸다는 듯이 문화해설사가 다가왔다. 해설사는 나이는 들어 보이지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우리 일행을 맞았다. 성주사지를 방문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유창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령성주사지는 1984년에 사적 제307호로 지정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절터라 했다. 넓은 절터의 군데군데 남아있는 흔적들을 비롯하여 원형이 보존된 5층 석탑 등 유물들을 설명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해설사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사료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관계로 다 듣지 못하고, 부족하지만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안내 자료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성주사지는 백제시대 오합사라고 처음 세워진 호국사찰이었다. 신라하대 구산선문의 제일 가람으로 2천여 명의 승려가 수도했던 웅장한 규모와 역사를 지녔다고 한다. 또한 최치원이 찬(撰)하고 최인연이 글씨를 쓴 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가 보존되고 있다. 이 비는 나말여초 당시 최고의 탑비로 국보 제8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우리일행은 시산제를 올린 자리와 성주사지 주변에 버려진 잡다한 오물들을 줍는 자연정화활동을 간단히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다음 행선지는 점심식사를 위해 천북면 소재 굴 단지로 향했다. 3월이면 굴 맛이 시들한데 마침 굴 철이 끝나기 전에 굴 단지를 찾은 것이 다행이었다.

 

오늘 점심은 푸짐했다. 시산제를 올릴 때 회원들이 바친 복채(卜債)가 꽤 많아 종일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경비로 충분한 액수였다. 퇴직공무원협동조합 산악회의 시산제는 장소는 다르지만 매년 초에 지내는 연례행사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다른 것 같다. 대부분 연로한 노숙(老熟)인 들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숙연(肅然)하고 진지해 보였다. 머물던 자리도 깔끔하다. 회원들 모두는 산신제를 지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건강한 노장(老將)으로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듯 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아침부터 맑았던 하늘이 더욱 청명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