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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를 아시나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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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욱
- 2016-11-25
- 조회수 280
0 엉또폭포
기암절벽과 숲이 욱어진 곳에 매력 덩어리인 엉또폭포는 보일 듯 말 듯 숲속에 숨어 있다가 한바탕 큰 비가 내릴 때 나타나는 높이 50 미터인 폭포다. ‘엉‘은 바위 그늘 보다 작은 굴을 뜻하고 ’또’는 입구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서귀포시 강정동 마을을 500미터를 지나 악근천 따라 오르면 서북쪽 800미터 지점에 있는데 반드시 비가 많이 오는 날 가야만 볼 수 있다.
0 쇠소깍
아름다운 섬 제주가 가슴에 깊숙이 숨겨온 명소 그곳은 바로 ‘쇠소깍’이다.
쇠소깍의 쇠‘는 소(牛)를 소(沼)는 웅덩이를 뜻하고 깍‘은 끝이라는 제주 말인데 쇠소깍 계곡 모습이 소가 누어있는 형극이라고 한 다.
신선이 된 것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여행객이라면 서귀포시 과원동로의 효돈 천 끝자락에 위치한 쇠소깍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효돈 천을 따라 흐르는 담수와 해수가 만나 오랜 세월에 걸쳐 길고 깊에 형성된 웅덩이에서 카약과 수상 자전거를 즐길 수 있고 계곡과 바다가 만나 어울리는 빼어난 경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0 삼굼부리
제주의 여행은 가을 풍경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억새 꽃 물결 출렁이는 낭만의 숲길을 거닐어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삼굼부리는 ‘산에 생긴 구멍’이란 뜻이다.
이곳은 용암이나 화산재의 분출 없이 폭발이 일어나 구멍만 남게 되는 ‘미르(용)형 분화구’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곳이다. 영화 ‘연풍의 연가‘ 촬영지이기도 했는데 오르는 곳은 없고 분화구만 깊다. 둘레길이 2킬로미터가 넘고 깊이는 백록담 보다 17미터나 더 깊은 132미터이다.
억새 꽃 물결 속에 추억을 담아보고 푸른 초원에 돌무덤이 인상적인 곳이다.
0 사려니 숲길
요지음 각광 받고 있는 ‘힐링 코스(healing Course : 치유 . 회복)‘ 이고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가 사려니 숲길이다.
‘사려니’란 ‘신령한 곳’을 의미한다. 비자림 입구에서 물찻오름을 거쳐 붉은오름까지 약 15킬로미터 되는 ‘피톤치드’(Phytoncide : 나무가 해충과 병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자연 항균 물질)가 넘쳐 나는 널따란 숲길을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걸으며 벤취에 앉아 음악도 듣고 책도 읽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다보면 스트레스는 해소되고 장과 심폐 기능은 한층 젊어 질 것이며 산책길에는 붉은 화산재 덩이가 깔려있어 바삭바삭 밟은 느낌이 일품이다.
0 성산일출봉(城山日出峯)
용암이 솟아오르다 물을 만나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거대한 가마솥 모양인 이곳은 멀리서 바라보면 성(城)을 닮은 산(山)같아서 성산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성산 높이 182미터, 넓이 129,774평방미터의 넓은 분화구는 푸른 초원의 원형 경기장 같고 깎아지른 듯한 바위에 해식애(海蝕崖)를 이루며 99개의 바위는 성산을 지키는 병사 같기도 하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라는 노래가사가 귓전을 울려 주는 듯 한데 이곳에서 1박을 하고 새벽에 성산에 올라 해돋이를 보려는 인파들로 성산은 넘쳐난다.
0 성읍(城邑) 민속마을
성읍 민속마을은 조선 태종16년에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되었던 정의현청이
세종 5년 이곳으로 옮겨진 이래 500여 년간 현청(縣廳 ) 소재지였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세종 5년 이곳으로 옮겨진 이래 500여 년간 현청(縣廳 ) 소재지였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가니 개량한복에 감색이 잘 어울리는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들어와 보시라고 한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장대가 두 개 걸려있어 꺼려하자 괜찮다고 한다.
바로 곁에는 똥 돼지가 한 마리 있었다. 사람이 변을 보면 똥을 받아먹는 돼지인데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변을 보는 변소가 골목길 한가운데 돌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의아 스러 웠다.
집안에는 물 허벅이 있고 커다란 항아리에는 빗물을 받아쓰려고 감나무를 따라 늘어뜨린 볏짚이 항아리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딸 하나 낳으면 독항아리도 하나 셋이면 독항아리도 셋이라 했다. 조상님 제사는 방이 아닌 돌로 굴처럼 만든 곳에서 지내며 시어머니 며느리가 한 집에 살아도 밥은 각자 따로 해 먹는다고 한다. 또한 조랑말이 커서 승마장으로 가면 수익금의 10퍼센트는 말 키운 사람 몫이 되고 우승하면 상금액에 비례하여 수익금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는 교사 출신으로 구수한 목소리에 생글생글 웃으며 제주방언을 맛 깔 스럽게 써가며 방으로 안내 했다. 그리고 말뼈. 매실, 오미자 등의 효능을 소상하고 친절히 설명하여 오미자 진액을 하나 샀다.
마을을 나와서 달리다보니 푸른 초원에 싱싱한 말들이 어실 렁 거리며 노니는 모습이 정겹다.
0 대원사 (大圓寺)
말 사육장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 보면 대원사 가는 길이 나온다.
제주도 서귀포시 일과리
대원사 경내는 상당히 넓고 커다란 금동불상이 어서 오라 손짓해 준다.
이곳은 1949년 제주 4.3사건 당시 좌익세력이 이곳에 들어와 항거하다가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역사적인 장소였다는 것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0 山房山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안에 있는 종상화산(鐘狀火山 : 종 모양)이며 높이 395m으로, 그 형태가 특이하다. 온통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방산 중턱에 산방굴사가 있다. 이 산은 원래 한라산 정상이었던 것이 화산활동으로 뽑혀 이곳 산방산이 되였고 그 뽑힌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는 전설이 사실인 양 산방산은 제주의 다른 산과는 달리 분화구가 없으며, 외벽은 온통 풍화작용으로 침식되어 있다.
남서쪽 기슭, 중턱 지점에는 산방 굴(山房 窟)이라는 석굴이 있고 그 안에 불상을 안치하였기 때문에 이 굴을 산방굴사(山房窟寺)라고도 한다. 굴 내부 천장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산방산의 암벽을 지키는 여신 ‘산방 덕(山房 德)’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 한다. 산의 남쪽 해안에는 성산포 층 (城山浦 層)이 있고 심한 해식(海蝕)으로 절벽의 암석해안 앞 바다에는 새끼 산방산이 외롭게 앉아 있다.
제주 북쪽의 용두암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이라면, 제주 남쪽의 용머리해안은 용이 바다로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용머리해안은 약 80만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응회암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용머리해안은 해식절벽으로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바닷물이 옆으로 찰랑대는 바위 위를 걸으면서 돌아보는데 층층이 색을 달리하고 있는 바위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 파도에 의해 파여진 멋진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해안을 한 바퀴 돌고 나와 산방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바위는 영락없는 용의 모습이긴 한데 머리와 등 부분 곳곳이 잘려나간 듯 보인다.
용머리해안은 해식절벽으로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바닷물이 옆으로 찰랑대는 바위 위를 걸으면서 돌아보는데 층층이 색을 달리하고 있는 바위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 파도에 의해 파여진 멋진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해안을 한 바퀴 돌고 나와 산방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바위는 영락없는 용의 모습이긴 한데 머리와 등 부분 곳곳이 잘려나간 듯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중국 진시황이 이곳에서 왕이 날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사람을 보내서 칼로 곳곳을 갈라놓았다고 한다. 그때 칼 맞은 바위에서 피가 흘렀으며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바다를 바로 접하고 있는 길이라 물때를 맞춰 찾아가야 관람할 수 있으며, 바람이 많이 불거나 파도가 거친 날은 입장이 제한되니 미리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그리고 하멜표류기념탑(漂流記念塔)이 있다.
조선 후기 네덜란드인 ‘핸드 릭 하멜( Hendrik Hamel )’이 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상을 기록한 책으로 ‘난선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관한 서양인의 최초의 저술로 1653년(효종 4) 네덜란드의 무역선 스페로 호크(Sparrow Hawk)호가 심한 풍랑으로 난파되어 선원 64명 중 36명이 중상을 입은 채 제주도 산방산(山房山) 앞 바다에 상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