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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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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욱
- 2016-07-13
- 조회수 372
철원기행
구름이 잔득 낀 하늘이 햇살이 쨍쨍 나는 날 보다 오히려 여행하기는 좋다고 여겨진다.
오늘은 ‘퇴직공무원산악회’에서 철원지역을 둘러보기로 하고 아침 일찍 대전을 출발하였다.
남북이 휴전선으로 오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철원은 북한과 마주하는 최북단 지역인데 철원을
찾는 감회가 자못 크다.
철원은 매우 유서 깊은 곳이다. 철원의 지명은 고구려시대에 명명된 후 신라 경덕왕 때 철성으로 부르다가 궁예가 901년 태봉국을 세우고 철원을 도읍지로 하여 18년간 통치를 했으나 스스로를 ‘도솔천 미륵불을 자처하면서 ’관심법‘(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신통력이 아닌 자신의 마음상태를 성찰하는 불교 수행방법) 으로 신하들을 통치하다가 눈 밖에 나 왕건에 의해 축출되면서 철원은 천년의 세월동안 변방에 머무르고 있는 애달픈 역사를 안고 있다.
먼저 도착한 곳은 ’고석정‘ 이다.
고석정(孤 石 亭)은 철원팔경 중 하나이며 철원 제일의 명승지로 꼽힌다. 한탄강(궁예가 왕건군사들에 쫓기어 이 강가에 이르러 탄식했다는데서 한탄강(恨歎江)이라고 부르게 되였으나 최근에는 漢歎江으로 불린다.) 한복판에 치솟은 20여m 높이의 거대한 기암이 천연덕스럽게 우뚝 솟아 있고, 그 양쪽은 옥같이 맑은 푸른 한탄강 물이 휘돌아 흐른다. 여기에 신라 진평왕 때 축조된 정자와 고석바위 주변의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한다.
고려 때는 충숙왕이 찾아와 노닐던 곳이라 하는데 ,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이 활동하고 은거했던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저 위 ’직탕폭포‘에서 ’승일 교‘를 거쳐 오는 고석정의 한탄강은 강폭은 넓지 않으나 이 지점에 와서 특히 강물이 깊고 푸르며 굴곡이 심한 천연의 곡선을 이뤄 아름답고 젊은이들의 트래킹 코스로도 이름이 높은 곳이다. 강폭 양쪽 주변으론 깎아지른 절벽이 산수화처럼 수려하 게 우뚝 서 있고, 옛 정자는 사라졌으나 원래의 자리에 근래 세운 정자가 있다.
이곳을 처음 찾아온 내게는 태고의 비경을 숨겨온 한탄강가에 솟아오른 외로운 바위 고석정은 그립고 그리던 임을 만난 자리처럼 신비롭고도 반가웠다.
이곳을 처음 찾아온 내게는 태고의 비경을 숨겨온 한탄강가에 솟아오른 외로운 바위 고석정은 그립고 그리던 임을 만난 자리처럼 신비롭고도 반가웠다.
고석정
한탄강가 고즈넉한 곳
영겁의 세월을 머금은 채
외로운 임 신비스런 고석정
푸른 물 맑은 바람 벗 삼아
오가는 길 손 굽어보는 너
그립고 그리던 임 만난 듯
오늘에야 너와 나 마주 앉아
술 잔 들어 회포를 푸 누나.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제2 땅굴‘이다.
이 땅굴은 북한의 기습 남침용으로 파내려오던 것을 1973년 11월 20일 푸른 별 청성부대 상병 이 기태 등이 보초근무 중 땅속에서 폭발음을 듣고 굴착 끝에 1975년 3월 24일 발견한 것이다. 지하50-160미터 깊이로 총길이 3.5킬로미터이고 많은 병력이 집합할 수 있는 광장도 있다. 이 땅굴이 성공했다면 1시간에 3만여 명의 무장병력이 탱크를 앞세워 기습할 수 있었음으로 이 땅굴의 발견은 위기의 순간에 우리에게 내린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땅굴 굴착과정에 북괴가 설치한 폭탄으로 8명의 병사가 희생된 안타까운 안보 현장임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쿨 해지고 복받치는 울분을 참을 길이 없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평화전망대‘ 이다.
이 전망대는 비무장지대(DMZ)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7년 조성 되었다. 전망대로 가려면 최근에는 모노레일을 설치하여 노약자들도 쉽게 오를 수 있게 해놓았는데 이곳 바로 앞이 궁예가 태봉국을 건국한 궁궐터라는 사실과 북한쪽 비무장지대인 철원평야를 바라보는 서글픈 현실에 정치적 이념이 이토록 한 민족과 국토를 갈라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한동안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이어서 ’백마고지‘를 찾아 갔다.
이곳은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적지로
1952년10월 6일부터 10월 15일까지 열흘간 24차례나 주인이 바뀔 정도로 혈전을 치른 끝에 제9사단이 중공군을 격퇴하고 승리하였는데 이 전투에서 아군은 22만 발의 포탄을, 중공군은 5만여 발의 포탄을 발사한 것으로 기록됐다. 중공군은 1만여 명이 사상자 또는 포로가 되었고 제38군은 막대한 타격을 입고 후방으로 물러났다. 국군 제9사단도 3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전투현장을 하늘에서 내려다 본 공군 조종사들이 백마가 누운 형상 같다고 해서 그 후 부터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
그 당시 이곳을 사수하던 백마고지의 영웅 김 종오 장군을 비롯한 수많은 호국장병들의 원혼이 잠들어 있는 이 땅을 밟는 지금 이 순간 이 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자유 대한민국의 품안에서 마음 편히 생활할 수 있음을 전적비 앞에서 머리 숙여 감사드리고 영면하시길 빌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두루미 전시관을 찾았다.
철원평야는 철새 두루미와 고니 등이 날아와 겨울을 나고 다시 북으로 날아가는 곳으로 이름난 곳이다. 특히 비무장지대와 인접해 있어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청정 농산물이 생산되여 웰빙시대에 철원농산물은 인기가 높아 나도 이곳에서 농산물을 조금 샀다. 겨울이 아닌 여름에 이곳을 찾아왔기에 철새의 귀족인 두루미를 볼 수는 없었지만 전시관에서 두루미의 생태를 관람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리고 ’월정리 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경원선이 달리다가 잠시 쉬어가던 이 곳 ’월정리 역‘은 더 이상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종착역 아닌 멈춤 역이 되고 말았다. 한 민족의 원혼과 한이 서린 이곳에서 철마가 창공을 향해 긴 기적소리를 토해 내며 저 푸른 철원평원과 철의 삼각지를 향해 살아져가는 그 날은 언제쯤일까?
가수 나 훈아 의 ’녹슬은 기차 길‘이 뇌리 속을 스친다.
휴전선 달빛아래 녹슬은 기차 길
어이해서 핏빛인가 말 좀 해다오.......................
남북분단의 이 현실이 평화통일로 이어져 한 민족이 마주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정겨웁게 살아 갈 그날은 아! 언제 돌아오려나 두둥실 떠가는 저 구름에 물어 본다.
2016. 7. 5
조 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