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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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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룡
- 2014-04-02
- 조회수 1974
친구의 부인
月峯 /최수룡
친구가 모임에 나타난 시간은 우리가 헤어질 때쯤이었다. 승용차 트렁크에서 시커먼 비닐봉지에 든 머리통만한 것을 내놓으며 내가 농사지은 것인데, 이제 무 재배하는 법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며 선물로 준다는 것이다. 친구의 얼굴을 보니 스스로 농사를 지어서 거둔 무가 대견스럽다는 듯 흡족한 미소에서 무척 만족스러워 보였다. 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야말로 엄청나게 컸다. 어찌 이리 큰 무로 재배하였느냐고 하였더니, 근무시간 외에는 아내와 함께 거의 밭에서 살다시피 하여 피와 땀으로 맺은 것이라 한다. 완전 토박이 농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친구는 원래 아내와 함께 잉꼬부부처럼 남들이 부러울 정도로 다정하게 살아왔다. 친구의 아내는 외모가 귀부인처럼 늘씬하면서도 얼굴에 귀티나는 모습을 지닌 전형적인 부잣집 맏며느리 인상을 풍겨준다. 가끔 동창생 부부 모임에 참석을 하면 워낙 훤출한 키에 가장 돋보이는 부부의 모습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행복한 부부였던 것이다. 군부대에 근무하는 친구가 서울로 전근하게 되었을 때도 부부모임으로 대전에서 멀리 떨어진 소도시에 까지 가서 석별의 정을 나누기 위해 늦게까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다정하게 이야기 해 주던 모습이 늘 뇌리에 남아 있다.
가끔은 친구가 동기생들과 만나 술판이 벌어졌을 때 2차를 가자고 하면, 무슨 2차를 하느냐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모습을 보며, 늘 친구의 아내는 좋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이 있는데, 그래도 심지가 곧고 술을 먹었을 때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에 나 자신이 흠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나약한지 모른다. 친구의 정에 못 이겨 술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들이 2차를 간다고 하면 차마 거절을 하지 못하여 늘 마지막까지 끝장을 보고야 만다. 그러다 보니 늘 늦은 시간에 술이 취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게 되니 아내가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뿐만 아니다. 다른 사람이 일을 부탁하면 거절을 하지 못하여 늘 승낙을 하고는 일에 묻혀 쩔쩔매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학년 초에 퇴직이 1년여 남았으니 실과를 교과전담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였을 때도, 차라리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체육을 하겠노라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뙤약볕에 체육 활동은 기피하는 교과이지만 활동하기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 파아란 하늘아래 맘껏 뛰어 놀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준다며 체육교과 전담을 자청한 것이다. 성당 홍보 분과장을 맡게 된 것도 실은 매몰차게 신부님께 거절을 하지 못한 우유부단한 나의 성격 때문이다. 너무나 바빠서 못한다고 거절하였지만 신부님은 주님의 뜻이니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단호히 거절도 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맡은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일에 치여 하루도 여유 있는 시간이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친구의 딸이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이 왔다. 동창생들과 함께 결혼식장에 갔는데, 친구의 아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얼핏 언젠가 친구의 아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생각났다. 딸이 결혼을 하는데도 결혼식장에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대단히 위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모임에서 친구는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그렇게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 변함없이 명랑한 경상도 어투로 말은 하였지만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딸이 결혼을 하면서 친구와 아들이 음식을 해 먹고 살림을 꾸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시쳇말로 나이가 들수록 부부가 함께 건강하여야 한다는 말을 곧잘 하지만 내 주위에서 현실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나는 동창생 모임 총무에게 연락을 하여 빠른 시간 안에 병문안을 독촉했다.
약속한 시간에 병원로비에 동창생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동창생들이 거의 다 모였을 때 쯤 친구는 대덕연구단지에서 나오는 차들이 너무나 많아 늦었다며 숨이 턱에 와 닿는다. 우리는 친구의 부인이 입원한 입원실로 갔다. 깜짝 놀랐다. 친구 부인은 완전히 중환자였다. 그렇게 예쁘고 곱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하얗게 서리 맞은 머릿결과 야윈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코에는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으며 의식도 없는 것이 아닌가. 술자리에서 자기의 아내가 10년만 더 버티어 주면 좋겠다던 말이 생각이 났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그 때가 되면 의학기술이 발달이 되어 줄기세포 대체의학으로 소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친구는 아내의 얼굴과 귀를 다정스레 만져주며,
“여보, 친구들이 당신 보러 왔어!, 당신 빨리 낳기를 기원하러 온 거야!, 당신이 옛날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 알지?”
“…….”
“아내가 얼마 전에 대세를 받았어. 민우야 내 아내를 위해 기도 좀 해 줄래?”
나는 아까부터 놀란 가슴에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또, 친구의 아내가 대세를 받았다는데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친구 집안은 대대로 심신이 굳은 불교신자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친구의 권유를 받은 민우는 눈을 감고 성호경을 그으며 화살기도를 하는 듯 하였다. 나도 순간적으로 성호경을 그으며 친구의 아내가 빨리 회복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을 하였지만, 환자를 위해 소리 내어 기도를 해주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움이 앞서기만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래도록 천주교 신자로서 여러 사람 앞에서 제대로 기도를 하지 못하는 벙어리 신자라며 얼마나 용기 없는 나 자신을 자학하였는지 모른다.
병원을 다녀온 후 너무나 많은 산적한 일로 인한 스트레스성 몸살과 두통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렇게 장난치고 말 듣지 않던 아이들도, 성당의 홍보업무 관련 일도, 교실수업개선을 위한 수업컨설팅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행복을 멀리서 높은 기대치에서 찾으려는 나 자신의 어리석음이 친구의 아내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친구야!, 자네 부인 건강회복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이번에는 제대로 기도를 해 줄게.’